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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망가 DVD 한국판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3년 JoyOn에서 DVD 사업을 전개 후 처음 선택한 아이템은 “아즈망가 대왕(TV)”.

제작을 총괄했던 나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한국형 DVD의 콘텐츠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음성과 자막에서 다음과 같은 구성을 생각했다.

음성 트랙 : 한국어, 일본어
자막 트랙 : 한국어1, 한국어2, 한국어3, 일본어


메인은 한국어로 하고 부가적으로 일본어 음성을 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은 북릿, 설정서에도 일관되게 적용했다. 국내 방송된 아즈망가 대왕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므로 첫 작품이면서도 이를 강행할 수 있었다. 마케팅/영업 부서의 지원하에 투니버스의 한국어 음성 데이터 구입을 마쳤고 오프닝/엔딩곡의 사용에 관한 계약도 맺었다.
한국어 자막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위해 준비했다. 일본어 음성과 매칭되는 한국어1 자막, 일본어 자막과 한국어 음성과 매칭되는 한국어2 자막이 바로 그것이다. 일본어를 번역하여 일본어 음성을 들으며 볼 수 있는 자막. 그리고, 그 일본어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본어 자막. 또, 한국 방송본에 맞춰 한국어를 그대로 적어놓은 자막. 이렇게 준비한 것이다.

그럼 위의 한국어3은 무엇인가?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국어 음성을 선택했을 때 화면도 한국 방송된 내용(넌리니어 편집된)이 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힘들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화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한국어 음성을 선택하면 화면에는 일본어가 나오고 음성은 한국어인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바로 한국어3이다. 즉, 화면에 등장하는 일본어만을 자막으로 표시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국 방송본과 100%동일한 결과물은 얻지 못하더라도 상당히 보완해줄 수 있는 장치다.

이렇게 아즈망가 대왕 DVD는 다른 업체에서는 하지 않는 4개의 자막을 넣었으며 자막 전수 테스트를 통해 될 수 있으면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일부 업체에서는 오소링 업체에 의뢰해서 샘플링 테스트로 끝내는 곳도 제법 된다)

그리고 오소링 업체와 충돌이 일어난 부분은 타이틀 메뉴. 애니메이션으로 화려한 타이틀 메뉴를 만들어 왔으나 기각하고 일본과 동일하게 바로 넣자마자 재생되게 만들어놨다. 그리고 메뉴 선택은 화려한 동화를 줄이고 심플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것은 아즈망가 만화책을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고 작업을 강행했던 내용이다. 국내 오소링 업체들의 타이틀 만들기는 상당한 수준이며, 다양하고 화려한 기법을 동원해 즐거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즈망가의 분위기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심플하게 가는 것을 방향으로 잡았다. 여기서 영어부서와 조율하여 지나치게 단순하게 나오는 것에서 조금 색상과 무늬를 넣어 액센트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오소링 업체의 메뉴 담당자의 기안을 계속적으로 수정 요청했다. 이점은 개인적으로 미안한 감은 있지만 부분부분 봤을 때 우수한 DVD기보다는 총괄적인 면에서 우수한 DVD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었음을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종횡비 문제, 음성선택 문제 등, 여러 가지 기술적인 요청에 대해 오소링업체는 잘 이해해 주었고,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최적의 자막이 선택되게 하는 등 우수한 결과물을 내 주었다.

예상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투니버스 방영 시의 한국어 로고다. 대원에서 출시했던 아즈망가 대왕 만화책의 로고에 익숙해진 국내 팬들에게 투니버스 제작 로고는 낯설었던 것이다. 영업부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한글화팀, 국제부의 이견을 조율하고 투니버스, 대원의 협조하에 대원의 로고를 라이센스해 쓸 수 있게 되었다. 패키지를 잘 살펴보면 로고 라이센스에 대해 표기된 것이 보일 것이다. (제작 완료 후 빠진 것이 확인된 곳에는 스티커 처리를 하였고, 멤버십 카드는 카드용 출력을 이용해 저작권을 명기하여 대원에 양해를 구했다. 도움을 주신 당시 뉴타입 편집부의 안영식 편집장님, 김희성 기자님께 감사드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그와 함께 추진된 것은, 치요에게 한복을 입혀보자!는 것이었다. 일본의 제작사에 한복 사진집과 배경자료를 보내주고 그에 따라 샘플안이 도착했다. 한복의 무늬 등에 대해 세부 지시, 수정사항을 요청했고 그 데이터가 도착하였다. 이것은 포스터로 제작되었고 설정서 마지막에 중간 체크의 러프 스케치를 수록하여 준비를 마쳤다.
이 한복 입은 치요에 대한 것은 업자들에게도, 소비자들에게도 배송해서 오픈케이스 사진이 올라올 때까지 비밀이었다. DVDPrime등을 지켜보며 소비자들이 “한정판을 구매해서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즐겨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동시에 투니버스의 신동식 PD님께서 성우 인터뷰를 제작 지원해주셨다. 게임 작업을 할 때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주신 분인데, 고맙게도 이번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셔서 매우 훌륭한 성우 인터뷰집을 넣을 수 있었다.

기획 초기부터 매우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디자인팀에서 레이블 디자인, 일본판을 베이스로 만든 한국판 패키지, 북릿, 서비스 아이템 제작 작업을 진행했고, 한정판의 4컷 만화를 위해 추가 계약을 해서 한정판의 가치를 더욱 높이도록 노력했다. 타업체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아즈망가의 제작에 들어간 모든 일러스트, 아트 디자인 컷을 유상 라이센스해왔고, 모든 과정을 일본 저작권자의 컨펌을 받아 작업한 것이다.(설정 자료는 무상 제공해주었다. 그것까지 돈 받긴 뭐했던 모양이다.)

어찌 되었건 아즈망가 DVD 한정판은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처음으로 DVD를 유통해보는 영업부에서 발에서 불나게 뛰어다니며 시장을 개척해왔다.
이런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최고의 제품이 되기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노력하였다. (제작에 관계한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물론, 100% 모든 이를 만족시켜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 선전했다고 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제작 시에도 일본 컨펌 시에도 발견 못 한 내부 케이스 오타 사건이다. 영어 철자 중 하나가 빠진 것이 문제가 되어 리콜까지 이어진 일인데 재 재작하여 배포하는 게 이상적이다라는 리포트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실제로 리콜까지 연결될지는 예상 못 했다.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완벽함을 추구해야하는 것은 사실이나 사업인 이상 일정 레벨 이상을 넘어가는 수준을 구현하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한다. 그 선을 어디에 두냐가 중요하겠지만 재작업을 요청한 본인도 솔직히 재작업이 100%이뤄지리라는 기대는 안 한 게 사실이다. (소장중인 일본에

게임 한정판 제공품 대한 소고

예전, 90년대 후반, “한정판”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게임 하나를 사면, 이것도, 저것도 끼워주는 이벤트다.

나도 1997년 에베루즈를 출시하면서 한정판 기획을 했었다. 그때 아마 50카피 정도만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은 에베루즈 T는 사내에서 야근용 복장으로 많이 쓰였다. =) 그이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여러가지 이유로 그다지 한정판 기획은 하지 않았다.

사내에 디자인팀이 있었기에, 제작과정이나 기타 QA 쪽을 직접 할 수 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좋은 퀄리티의 것을 뽑아내기가 어렵다. 방산시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각종 이벤트 상품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나는 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맘에 드는 아이템을 찾아도 제약이 많다. 수량이나 디자인 변경에선. 거기에 내부에 QA를 담당할 직원이 없다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샘플과 다른 납품물. 예상외의 인쇄 문제 등등. 일 예로 하루 날잡아 납품된 케이스를 전수검사해서 불량품(거진 6~70%)를 반품했더니 그다음 납품은 칼같이 제대로 만들어 나온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제작사들은 한글화의 퀄리티를 올리고, 이벤트 품의 퀄리티를 올릴 생각보단 보다  많이 많이 끼워 줘 뭔가 한아름 얻어간다는 느낌을 주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클리어 파일을 열면 인쇄가 서로 붙어서 뜯겨나가거나(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들지 못하고 “빨리빨리”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단 얘기다) 원화 데이터를 받지 못해 드럼스캔 받아 급조한 일러스트 굿즈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 픽쳐 CD라 불리던 CD 레이블 컬러 인쇄도 오프셋과 실크스크린 두종류가 있으나, 단색용으로 주로 쓰이는 실크스크린을 단가가 싸단 이유로 선호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인쇄 방식의 차이로 선 수를 낮춰야하는 실크스크린은 컬러 일러스트 레이블에 사용하기엔 너무 조잡했던 것이나, 제작사들은 그런 차이를 인식도 못했거나 단가 줄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97년 에베루즈 CD 프레스를 맡았던 웅진에서 “이런 요구 조건을 거는 업체는 처음 봤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선 그다지 품질 차이를 느낀 업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욱 경악한 것은 2000년이 넘어 출시된 XBOX용 타이틀도 실크스크린 인쇄였다는 거였다. 한국 시장을 뭘로 보는 건지….

거기에, 그런 이벤트 품은 어디까지나 서브라는 것을 망각했단 것이다. 당시 한글화에 문제가 많았던 제품에 이벤트 굿즈로 밀어붙이는 업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부에서 제대로 테스트도 해보지 않아 한글이 깨져나가고, 노래 나오는 거 빼버리고 밀어붙이고, 한국어 어조사 조합의 규칙성도 제대로 로직화 하지 못하는 졸렬한 프로그래밍 수준 등등. 메인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이벤트 굿즈로 밀어 붙이는 그런 본말 전도된 현상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돈 써서 주고도 욕먹는 그런 것. 업체도 그렇고 그런 걸 보고 욕하지 않던 소비자들도 문제는 있었다. 이름만 바꾼 업체가 동일한 오류를 반복 해도 계속 속아주던 소비자 들을 보면서 내가 품질 하나 하나 따지는 게 정말로 효과는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으니까. (뭐, 정당 이름만 바꾼다고 새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애들이나 할 거 없이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

오늘 국회의원 투표를 마치고, 투표확인증을 받았다. 뭔가 투표 참가했다는 것에 대한 이익을 주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딴 걸 기획했나. 쓸 수 있는 곳도 적은데다 기간도 한 달이 채 안 된다. 이런 쓸모없는 걸 돈들여 찍어 나눠 주느니 차라리 쓰레기 봉투를 나눠줘라. 그게 국민이 원하는 거다. 돈 써서 주고도 욕먹는 거 아닌가?

투표확인증을 받아들고, 10여 년 전의 그때가 떠올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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