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한정판 제공품 대한 소고

예전, 90년대 후반, “한정판”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게임 하나를 사면, 이것도, 저것도 끼워주는 이벤트다.

나도 1997년 에베루즈를 출시하면서 한정판 기획을 했었다. 그때 아마 50카피 정도만 팔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은 에베루즈 T는 사내에서 야근용 복장으로 많이 쓰였다. =) 그이후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여러가지 이유로 그다지 한정판 기획은 하지 않았다.

사내에 디자인팀이 있었기에, 제작과정이나 기타 QA 쪽을 직접 할 수 있었지만, 어지간해서는 좋은 퀄리티의 것을 뽑아내기가 어렵다. 방산시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각종 이벤트 상품 시장에서 좋은 제품을 만나는 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 맘에 드는 아이템을 찾아도 제약이 많다. 수량이나 디자인 변경에선. 거기에 내부에 QA를 담당할 직원이 없다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샘플과 다른 납품물. 예상외의 인쇄 문제 등등. 일 예로 하루 날잡아 납품된 케이스를 전수검사해서 불량품(거진 6~70%)를 반품했더니 그다음 납품은 칼같이 제대로 만들어 나온 일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제작사들은 한글화의 퀄리티를 올리고, 이벤트 품의 퀄리티를 올릴 생각보단 보다  많이 많이 끼워 줘 뭔가 한아름 얻어간다는 느낌을 주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클리어 파일을 열면 인쇄가 서로 붙어서 뜯겨나가거나(충분한 시간을 들여 만들지 못하고 “빨리빨리”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단 얘기다) 원화 데이터를 받지 못해 드럼스캔 받아 급조한 일러스트 굿즈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소위 픽쳐 CD라 불리던 CD 레이블 컬러 인쇄도 오프셋과 실크스크린 두종류가 있으나, 단색용으로 주로 쓰이는 실크스크린을 단가가 싸단 이유로 선호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인쇄 방식의 차이로 선 수를 낮춰야하는 실크스크린은 컬러 일러스트 레이블에 사용하기엔 너무 조잡했던 것이나, 제작사들은 그런 차이를 인식도 못했거나 단가 줄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97년 에베루즈 CD 프레스를 맡았던 웅진에서 “이런 요구 조건을 거는 업체는 처음 봤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선 그다지 품질 차이를 느낀 업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욱 경악한 것은 2000년이 넘어 출시된 XBOX용 타이틀도 실크스크린 인쇄였다는 거였다. 한국 시장을 뭘로 보는 건지….

거기에, 그런 이벤트 품은 어디까지나 서브라는 것을 망각했단 것이다. 당시 한글화에 문제가 많았던 제품에 이벤트 굿즈로 밀어붙이는 업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내부에서 제대로 테스트도 해보지 않아 한글이 깨져나가고, 노래 나오는 거 빼버리고 밀어붙이고, 한국어 어조사 조합의 규칙성도 제대로 로직화 하지 못하는 졸렬한 프로그래밍 수준 등등. 메인을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이벤트 굿즈로 밀어 붙이는 그런 본말 전도된 현상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돈 써서 주고도 욕먹는 그런 것. 업체도 그렇고 그런 걸 보고 욕하지 않던 소비자들도 문제는 있었다. 이름만 바꾼 업체가 동일한 오류를 반복 해도 계속 속아주던 소비자 들을 보면서 내가 품질 하나 하나 따지는 게 정말로 효과는 있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까지 들었으니까. (뭐, 정당 이름만 바꾼다고 새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애들이나 할 거 없이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

오늘 국회의원 투표를 마치고, 투표확인증을 받았다. 뭔가 투표 참가했다는 것에 대한 이익을 주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딴 걸 기획했나. 쓸 수 있는 곳도 적은데다 기간도 한 달이 채 안 된다. 이런 쓸모없는 걸 돈들여 찍어 나눠 주느니 차라리 쓰레기 봉투를 나눠줘라. 그게 국민이 원하는 거다. 돈 써서 주고도 욕먹는 거 아닌가?

투표확인증을 받아들고, 10여 년 전의 그때가 떠올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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