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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된 한글판을 만나고싶습니까? (98년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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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 호 : 563/768 ▶ 등록자 : ASTERIS │
│ ▶ 등록일 : 98년 03월 22일 16:12 │
│ ▶ 제 목 : 제대로된 한글판을 만나고싶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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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한글화하는 것은, 무척 힘이듭니다.

사실, 게임에 한글을 띄우기까지는 능력있는 프로그래머라면 “어떻게 든 방법은 있다”라고들 말씀을 해주시지요. 아는 프로그래머 아저씨는 보통 일주일이면 어떻게든 완벽하게 한글은 표시되게 만들어주시더군요. 물론,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한글화 작업기간동안 한글이 일본어/중국어를 대신해 뜨는 과정은 결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스크립트나 리소소의 번역, 이곳에서 승부가 난다는 것이지요. 단지 한글만 뜨게 한다면 한달이면 1-2개씩 쏟아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래서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작 폰트의 느낌도 무시하고 굴림체, 바탕체, 돋움체(윈도우즈 기본 폰트)로 도배를 하거나 맥의 서울체로 도배를 해놓은 엉성한 그래픽 수정. 눈에 거슬리는 오자, 탈자들. 한글화라고 하면서 조사처리조차 해놓지 않은 엉성함. 게임을 테스트 해봤는가?라는 의문이 들정도로 엉성한 번역. 일본어와 한글의 미묘한 말의 차이(2중부정의 남용, “그녀”라는 표현의 남용, 같은 한자를 써도 내용은 다른 것 등등)를 직역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사람들….

결국 원작을 한글화하면 망친다라고 하는 것은 저런 이유에서가 아닌지요?

돈,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돈 때문에 엉성한 제품을 팔아 돈을 챙기실 것입니까?

….

며칠전, 모사의 연애시뮬레이션 한글화를 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3월말 발매라고 크게 광고를 때려놓았더군요. 하지만, 제가 있는 곳에 오셔서 새로 날아온 MO를 체크해보시면서 “또 제대로 소스코드를 안보냈다”고 불평하시더군요.
그때, 몇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한마디 던져봤습니다.
“그동안, 너무 날림으로 작업하시는 것 아니신가요?”
라는 말에 한마디로 답해주시더군요.
“그쪽에선 관심도 없고, 저가에 빨리 해달라고(이미 광고엔 3월이라고 때려놓았습니다.) 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써주는가?”



글쎄요, 게임을 한글화 계약을 맺다보면 여러가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이건 한글화 한다고 해서 인기를 끌 것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고 하는 이른바 찬밥취급의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과 이른바 “신경써서 관리해야할 작품”은 따로 있는 것 이지요. 하지만, 그런 개념없이 모두 한글만 뜨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업자들이 꽤되는 것 같더군요. 게다가 그정도 타이틀이면 제법 신경을 써야할만한 위치의 타이틀 중의 하나일텐데 말입니다.

한글만 뜨면 OK라는 사람들과 완벽하게 한글화 하겠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게이머들인데, 너무나도 조용하더군요. 엄청난 한글실력을 가지셔서 오역, 오탈자 등은 모두 척척 알아 교정 보실 수 있으신 것입니까?
조사처리가 안되어 “나(은/는)”따위의 표현 이 나와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게이머들 스스로 저급 게임을 쏟아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항의 하십시오. 보이콧 하십시오.

돈만 벌자고 한글화 한다면, 정말 속편하게 한달에 한두개씩 쏟아낼 수 있습니다.
욕이야 듣던 말던 무시하면 되니까요.(이것이 돈의 무서움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신 다면…
불평과 불만을 “표시”하십시오.

여러분들은 떳떳하게 “한글화”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고 구입하신 고객입니다. 고객의 소리에 끝까지 귀기울이지 않는 그런 뻔뻔한 업주들은 없습니다. 항의 하십시오. 그리고 쟁취하십시오. 여러분들은 돈에 지배당하고 있는 일부 업주들과 제대로된 작품을 내놓길 바라는 팬들과의 싸움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마디 한마디가 좋은 게임을 내놓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의 한장의 벽돌로 쌓여갈 것입니다.

류지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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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14일 첨언.
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은 “센티멘탈 그래피티”로 기억합니다 =)

에베루즈

2001년 12월 30일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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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루즈

 

원제작사 : Fujitsu Palex

한글화 : 한국라이센싱

제작년월일 : 1997년 3월 (한글판기준)

 

류지가 초기에 맡았던 타이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무래도 에베루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맡았던 타이틀 중에선 그래도 가장 큰 작품이기도 했고, 원 스탭에 류지가 좋아하는 키타즈메 히로유키씨가 끼어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지요.

 

사실, 이 작품을 처음 발견한 것은 컴퓨티크였는지 로그인이었는지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일본의 게임 전문지의 새소식란에서였습니다. “이타바시 마사히로, 키타즈메 히로유키씨가 참가한 마법학원물 게임이 나온다”라는 것이었지요. 그 것을 기초로 일본에 연락을 취하게되었고, 아직 알파판도 안나와있던 후지츠 팔렉스에서는 한국에서 라이센스 관련으로 연락이 오자 대단히 놀랐다고합니다. 이후, 류지도 이 게임의 계약건으로 후지츠에 놀러갈 수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한글화 하겠다”라는 약속을 했었습니다. 이때 이미 계약이 추진되고 있었으므로, 이후 게임이 어느정도 완성되어 광고를 보고 연락한 다른 업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이었지요.

 

이, 에베루즈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뭔가 허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벤트 수도 적구요. 그 것은 에베루즈가 미완성작이었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어떤 근거로 류지가 미완성작이라고하느냐. 바로, 스크립트에 숨겨져있습니다. 에베루즈 스크립트를 열심히 번역해서 교정을 보았지만, 실제로 게임에는 그 스크립트의 반정도 밖에 이벤트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준비만 하다가 실제로는 숨겨놓고 쓰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벤트 그림에서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것이 제법 들어있구요. 에베루즈의 썰렁한 엔딩에 놀랐던 분들도 제법 계셨을 건데요. 이것도 같은 이유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베루즈의 엔딩을 보완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일본측에 제시했고, 일본측에서도 긍정적으로 나왔습니다. 뭐, 이쪽에서 보강하는 것에 대해서 계획을 세우려는 도중 에베루즈 스페셜이 제작된다는 것을 알고 취소했지만 말입니다. (그때, 마음만 먹었으면 남자 노이슈와의 엔딩을 추가했을지도..-_-; 농담인 거 아시죠?)

 

사실, 류지의 본격적인 한글화는 에베루즈에서 시작됩니다.

게임을 한글화 할 때 그 대상을 누구로하느냐에 대해서 류지는 “매니아를 만족시키면 좋겠지만, 일단은 일반인을 상대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품질을 내고싶다”의 입장입니다. 매니아의 경우는 쉽게 일본판(또는 원판)과 비교를 하며 차이점을 찾아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점이 제가 모자라기에 실수했거나 모르고 넘어간 것을 지적해주신 분들보다 일본판과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싫다라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직접 한글화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그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급적 원본의 느낌을 충실히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살리려고 하는 점은 “일본판을 일본인이 플레이했을 때의 느낌을 한국판을 한국인이 플레이했을 때 느낄 수 있도록”정도입니다.

 

그래서, 당시 업계에서는 잘 시도하지 않던 주제가도 한국어로 불러 넣었고, 더빙도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전문성우들과 함께 했습니다. 사실 주제가는 한국에서 제작한 게 아니라, 일본 후지쯔 측에 의뢰를 해서 제작해왔습니다. 일본판 주제가를 담당했던 프로듀서가 선택한 일본쪽 한국인에 의해 제작되었는데요. 서로 연락이 어긋나서 어색한 발음 몇군데를 수정하지 못하고 제품화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처음으로 이런 일을 한데서 온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녹음은, 애드원이라는 스튜디오에서 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대학 방송반에서 녹음하거나 하는 정도였는데, 애드원은 당시 디즈니 극장판, TV판등을 전문으로 녹음하는 유명한 스튜디오였지요. 이곳에서, 강미형님, 김정주님, 애재용님, 이호인님, 차명화님을 모시고 녹음에 들어갔습니다. 차명화님을 다시 뵐 수 있었던 것은 투니버스판 카우보이 비밥 녹음때 였는데 정말 반갑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