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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ZWEIL PC3x 사용기

먼 먼 옛날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이 나왔다.
곡이 참 맘에 들었고 나도 저런 곡 하나쯤 연주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거나 하진 않았다. 사실 그때 집에는 동생이 피아노 배운다고 사놓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긴 했다. 뭐, 피아노를 사기로 했던 때, 마냥 컴퓨터가 좋았던 공학도 지향의 나는 YAMAHA DX7(*주1) 같은 전자 키보드를 사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자료를 기초로 얘기했지만, 주로 쓸(?) 동생의 입장에선 피아노를 배워야지 키보드 같은 거로 하면 감도 틀리고 뭐 어쩌고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시당했던 기억이 난다.

울트라 총력 특집. MSX로 MIDI를! (MSX매거진, 1989년 4월호)

내 신시사이저와 MIDI장치에 대한 동경은 80년대 8비트 MSX컴퓨터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살면서 피아노를 치기란 참 어렵다. 치고 싶다고 아무 때나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공이나 그쪽에 푹 빠져 있지 않은 이상은 점점 피아노를 치는 빈도가 줄고 결국에는 빨래 쌓아두는 용도로 사용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그 피아노는 짐이 되어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헐값에 팔려나가 버렸다.

강산이 두어 번 변하도록 그렇게 악기와는 인연이 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살면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프랑스의 전 대통령 퐁피두(Pompidou)는 중산층에 대해서 말하면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것도 집어넣었다고 한다. 단지 먹고 사는 정도, 즉 단순히 얼마 벌어들이느냐보다는 얼마나 정신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아가느냐를 다룬 것이리라.
어렸을 적 집에 피아노가 있었고,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두 손으로 치는 것 정도까지 배우고 때려치운 게 전부다. 과연 지금 사서 잘할 수 있을까? 또다시 짐받이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리저리 검색을 시작했다. 어렸을 적 동경했던 DX7을 대신할 그 무언가를.

사실 나처럼 취미 용도에는 스테이지 피아노 76건 정도 되는 물건이면 적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76건과 88건은 건반 적용 기술이 달랐고, 본격 공학도(?) 마인드 발동으로 “기왕 살 거 신시사이저(*주2)를 노려보자.”라고 정했다. 한 번 사면 평생을 쓸 생각이고, 운용 가능한 예산하에서 “가장 좋은 것을 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이리저리 검색한 결과 KURZWEIL의 제품군, 그중에서 PC3x가 최종 후보로 올라가게 되었다.

저해상도 LCD로 모든 정보를 표시한다.

사실 비슷한 급의 외산 제품은 컬러 액정 터치스크린에 빠방한 부수적인 것들을 제공해주지만, PC3x는 시야각도 좋지 않은 흑백 액정이 달랑 달린 제품에, 구성이라곤 본체 하나 매뉴얼 한 권 달랑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로 적은 롬 용량으로도 멋진 소리를 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구현해냈다는 내용은 기계를 좋아하는 나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평생 쓸 물건이고 그렇다면 재밌는 녀석을 구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당분간은 피아노 대용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피아노 소리가 몹시나도 훌륭하던 말도 끌렸다. 거기에 가격 조건도 좋았다. 외국보다 훨씬 좋은 조건으로 팔리고 있었다. 영창 KURZWEIL에서 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오랜 고민을 끝내고 바로 주문에 들어갔다.

퇴근하고 받아본 PC3x는 거대한 탑이었다. 포장된 상자째 현관에 세워뒀는데 아 어디다 놔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일단 상자를 개봉하고 하나하나 꺼냈다. 어떤 물건이든 사면 매뉴얼부터 차근차근 읽어본다. 그래서 제일 먼저 매뉴얼을 찾았다. 응? 사용자 지원이 부실하다는 것은 미리 들어 각오하고 있었지만 “헉, 이건 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랑 몇 페이지짜리 간이 매뉴얼.

약 50여 페이지로 간단한 사용법을 다룬 퀵 매뉴얼

당황했다. 사실 외산 전자기기들을 많이 사왔고 매뉴얼을 보는 걸 즐겼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차피 알아서 쓸 인간은 다 알아서 쓴다 이건가? 거기에 건반을 하나하나 눌러보니 2-3개가 스프링 튀는 소리가 들렸다. 삐걱삐걱. 아 이 허접한 마무리는 뭐냐는 생각마저 들었다. 야외에서 쓸 것도 아니고 집에서 쓸 목적이었으므로 그 삐걱삐걱 소리는 무지 거슬렸다. 1차 교체. 이때 부실한 매뉴얼을 대신할 영문 매뉴얼을 부탁했다.

그리고 교체품이 왔다. 더불어 부탁한 영문 매뉴얼도 왔다. 간이 매뉴얼과는 비교가 안됐다. 건반 상태는 전반적으로 양호. 그런데 이번엔 한 두어 시간 켜놓고 이리저리 써 보는데 틱 소리와 함께 전원이 나갔다. 바로 영창 KURZWEIL에 연락했다. 조사해보니 본사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있었다. 바쁘니 바로 들고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I Park 분당 9층에 직접 들고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공장으로 들고가야 한다고 했다. 이미 들고왔으니 일단 놔두고 그쪽에서 손 보고 알려달라고 했다.  결과는 전원부 이상. 약 10일 정도 지나 신품 교체 처리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3번째로 받은 물건도 건반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아~ 심하다. 이게 KURZWEIL의 상위 기종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연락, 이번에는 건반을 체크해서 양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고 이미 한 달가량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교체하느라 시간 보냈으니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담당하신 분이 건반 모듈을 들고 방문하셨다. 섬세한 손길로 PC3x를 하나하나 분해하고 건반을 뽑아내고 새 건반으로 교체해 주셨다. 조립 후 점검 결과 양호. 교체용 건반 박스를 보니 이탈리아제다. 이쪽 사람들도 참 품질 관리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반 교체를 위해 분해한 PC3x

거기에 한 달가량 고생하면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는데, 그 사이 “새로 산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아, 스팀이 팍 오른다. 산 건 그 이벤트 전이지만, 제대로 된 물건이 내게 온 건 그 이벤트 기간 중이었는데. 신청했지만 무시(?) 당했다. 쩝. 뭔가 인연이 없나 보다~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렇게 말썽이 계속되니 “반품해버리고 나중에 사는 것”이 어떠냐는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한 번 샀으면 더는 못 고칠 정도로 고장 날 때까지 쓴다는 주의기 때문에 못 먹어도 GO!모드를 발동했다. 어찌 되었건 이젠 내 물건이다. 내 신시사이저다.

KISS를 글로 배웠습니다.

모 포털 광고다. 동영상을 통한 지식 전달을 강조하기 위해 글로 전하는 지식에 대해 웃기게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내가 즐기는 방법의 하나긴 하다. 뭔가 저건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그 대상을 사고 각종 자료를 사 모은다. 각종 책을 보고 하나하나 실기와 함께 이론을 공부해 나간다. 포토샵도 그랬고, Shade(*주3) 때도 그랬다. 사진을 배울 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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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서점을 뒤져 각종 책을 뽑고 몇 권 주문했다. 신시사이저의 전반을 다룬 책도 주문했고, MIDI 기술 관련 서적과, 예술 쪽을 공부하는 지인에게 추천받아 코드이론 서적 몇 권도 샀다. 초보용 피아노 교본도 사고 이리저리 준비했다. 그리고 학습지원용 하드웨어를 발견해서 그것도 샀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실습이 필요하므로 Pibo라는 건반 학습 보조도구와 Synthesia라는 프로그램도 사서 사용자 등록했다. MIDI단자로 연결해두면 리듬 액션 게임과 같이 키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둘을 연동해 쳐야 할 타이밍은 Synthesia가 알려주고 쳐야 할 위치는 Pibo가 알려주도록 구성했다. Synthesia는 입력을 받아야만 다음으로 넘어가는 학습 모드도 있고, 얼마나 정확하게 눌렀는지도 체크도 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떨어지는 막대에 맞춰 해당 건반을 눌러주면 OK

좋아하는 곡도 있고, 새로 사거나 예전에 구해놓은 악보도 있으니 MIDI파일로 만들어서 넣어 두고 연습용으로 썼다. 당장 칠 수 있을 린 없지만, 그냥 악보만 보고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사실 건반을 누를 때 초보자의 입장에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 손가락 위치였다. 사실 정해진 것은 없다고하는데, 초보자용 악보 중에는 “추천”하는 손가락 번호가 써있는 게 있다. 이것도 함께 구했다. 연필로 하나하나 정리해가면서 미리 손가락의 움직임을 생각해봤다. 보다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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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응용 소프트웨어에서 사용하려면 PC3x의 음원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알려줄 패치 스크립트가 필요한데 제대로 된 게 없는 것도 알았다. 간단한 스크립트였다. 하지만, 없다. 이게 왜 없을까? 그래서 공개해 놓은 다른 응용 프로그램용 스크립트를 고쳐서 직접 만들어 공개했다. (http://asteris.pe.kr/blog/920 에서 다운로드 가능)
펌웨어는 꾸준히 업데이트 되었고, 그에 맞춰 스크립트도 계속 개선해 나갔다.

엑셀을 이용해서 작업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 사이 한글 매뉴얼과 DVD가 공개되었다. 두툼한 매뉴얼로 구입자는 신청하면 공짜로 발송해줬다. 이전에 받은 영문 매뉴얼보다 이후 버전 펌웨어에 대응했고, 종이도 좋은 걸 써서 두툼한 게 제법 맘에 들었다. 하지만 DVD는 제공되질 않았다. 뭔가 차별을 받는 느낌이다. 그 뒤 신품 산 사람들에겐 다 끼워준 것인데. 이전 구입자들은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라는 거다. 뭔가 아쉽다. 자막도 지원하지 않아 따로 번역 텍스트를 펴놓고 맞춰봐야 한다.
예전 애니메이션 DVD를 담당해 국내 런칭했던 경험도 있고, 실제 오소링 작업도 해본 경험상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며, DVD 단가도 얼마 하지 않는데, 무척 아쉬운 조치였다. 게다가 이미 만들어서 나눠 준 것 아닌가. 송료나 그런 게 문제가 되면 착불로 보내면 될 것이고, 정 그것도 힘들면 웹하드 등에 이미지를 올려주고 구입자들이 받아서 구워서 볼 수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일부는 개인적으로 자막을 넣어 동영상을 편집해보기도 했는데, 뭔가 KUZWEIL에서 제공한 번역 텍스트가 이상했다. 영어 쪽이 전문은 아니지만, 분명히 말하는 것과 번역 자막의 내용이 안 맞는단 느낌이 드는 부분이 보인다. 뭔가 아마츄어틱하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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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사용자 매뉴얼. 밑이 처음 제공한 퀵 매뉴얼이다.

그러던 중, PC3x의 모든 기능을 PC상에서 제어할 수 있는 KURZWEIL PC3 SoundEditor가 공개되었다. 앞서 얘기한 화려한 터치스크린식 경쟁 제품의 기능을 저해상도 흑백 액정과 버튼 조합으로 대체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것을 이용하면 그런 불편했던 UI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준다. 노트북, 타블렛 PC(*주4) 등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PC3x와 연결해서 오른쪽 구석에 놓아두면 다른 업체의 제품과 동등하게 또는 더 화려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터치 입력을 받는 MID나 타블렛PC라면 보다 편하게 PC3x를 제어할 수 있다.

신났다. 또, 부실한 사용자 지원(?)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매뉴얼을 다운 받고, 읽었다.
영어판, 한국판, 일본어판 매뉴얼. 모두 다운받아서 예쁘게 프린트했다. 철해놓고 차근차근 읽는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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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I는 ‘남프랑스’가 아니라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약자다.

이걸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주5) 그냥 한마디로 GAME OVER다.
악기를 모르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번역했거나, 기계 번역기를 돌렸단 얘기다.

서두의 문장부터 한글로 쓰여 있으나 어설픈 한국어다. 하는 일이 번역과 관계가 있어서 오랜 기간 여러 번역문을 체크해왔지만, 이건 심했다. 매뉴얼 전체가 엉망이었다.
학창시절, 번역서를 보면 오히려 이해가 어려워 원서를 놓고 전공 공부하던 생각이 났다.

이 사람들은 근성이 없다. 그냥 한글이면 OK구나.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얼마 전 PC3LE용 스크립트에 대한 얘기가 사용자 카페에 나왔다. 이미 PC3x용을 만들어 봤으므로 PC3x용을 PC3LE용으로 변환할 수 있는지 검토하다 PC3LE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X-PRO MG 처럼 멋있는 알파 휠에 아날로그 입력을 받을 수 있는 패드도 달린 것을 발견했다. 오호? 이거 부러운걸? 뭐 PC3x에는 안 달려 있으니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아니 할 수 없지를 모두 뒤집어라!

안 그래도 최근에 아두이노(*주6)라는 마이크로 컨트롤러에 취미를 붙였는데, 이 마이크로 컨트롤러를 이용하면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으므로 당장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구상을 했다.

그래! 나만의 입력 장치를 만들어 보자.

그냥 만들어 보기로 했다.
5 DIN커넥터를 구하고, 압력감지 센서를 조합해서 이리저리 맞췄다.
구동 프로그램은 이전에 사 놓은 컴플리트 MIDI 북과 컴플리트 MIDI 프로그래밍 북을 참조해서 작성했다.(위에 사진으로 소개했다)

1개의 압력 센서를 달아 놓은 테스트 버전. 그런데 기성품도 워낙 싼 제품이 많아 가격대 성능비는 안 나온다. 장점이라면 내가 원하는대로 프로그램해서 동작시킬 수 있다는 것일까?

압력 감지 센서를 누른 세기를 노트온벨러서티 값으로 바꿔 전송해주는 장치다. 이런 압력 감지 센서가 아니라 가속도 센서나 자이로 센서 등을 이용한다면 탬버린이나 들고 흔들 수 있는 악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며, 그 외의 상상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입력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소리는 PC3x가 담당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진 악기랑은 노래방 탬버린 정도와 인연이 있을 것 같던 나는 PC3x와 만나면서 직접 소리 내는 장치를 만들며 노는 사람이 되었다. 사용자를 연구하게 하는 것은 이 악기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KURZWEIL은 소통의 방법을 모른다.

KURZWEIL에서는 여러 가지 연수, 실습 기회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고 주기적으로 사용자 교육을 시행한다. 그걸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좋겠지만, 그걸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 고객 중에 존재한다. 또, 그것을 받을 정도로 전문적이지 않은 사용자도 있다. 그렇다면 지원책은 정확한 매뉴얼, 기술자료의 공개, 교육 동영상 공개 등을 대안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전혀 그쪽 지원이 없다. 회사 내부 방침이 어떤진 모르겠지만 그걸 산 사람의 입장에선 “배반당했다.”라고 느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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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악기는 좋다. 하지만, 그것을 포장할 줄 모른다. 제대로 된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지나치게 공학 전공 서적 같은 느낌이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서 사용자들에게 설명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한 흔적이 없다.
심지어, 사용자 카페의 글을 읽다 보면 고객 지원에서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가 있었던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분명히 영문 페이지의 펌웨어 업데이트 내용을 살펴보면 자세하게 변경 점을 언급하고 제한 사항을 설명해 주고 있지만, 국내에선 그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고, 틀리게 설명하는 예도 보였다.

지금 판매 규모나, 환경이 그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회사가 아니라면 이렇게 해선 안 된다. 여러 업체가 UX를 강조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가 더욱 쉽게 접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다. KISS를 글로 배웠다는 광고를 예로 들었지만, 현재 KURZWEIL사의 제품은 글로 배우기조차 어려운 상태다. 하물며 그 광고가 내세웠던 동영상을 통한 지식전달은 미국쪽에서 제작된 튜토리얼로 시도를 했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버렸다. 이미 여러 이벤트, 강좌를 통해 컨텐츠는 쌓여 있지 않은가? 그것을 글로 정리하고 동영상으로 만들어 배포하면 더욱 많은 사용자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매뉴얼, 실습 교육지원, 실습을 받을 수 없으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튜토리얼에 접근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공학자들이 모여 멋진 제품을 만들어 놓고 공학자들이 매뉴얼을 만들고, 공학자들이 판매하고, 공학자들이 사용자 지원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소비자들이 읽어야 할 매뉴얼은 “만든 나는 이해할 수 있으니 너도 이해하겠지?”라는 가장 원초적인 실수를 하고 있기도 했다. 외산 장비의 매뉴얼 원서 및 번역서를 구해 보면서 그 친절함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업체는 잘 나가는 게임기용으로, 잘 나가는 스마트폰용으로 제품을 내고 그에 대한 다양한 분석서, 해설서들이 쏟아지는 걸 보며 침만 꼴깍 삼켰다.

“많은 업체가 시도한 얼마 하다 사라지는 그런 곳이 아니길….”

그나마 최근에는 블로그, 트위터를 이용해 KURZWEIL 쪽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 초기 관련 소식을 사용자 카페에 처음 남겼을 때 건의했던 게 기억이 남는다. 많은 업체가 사용자를 위한다며 여러 가지 인터넷 통로를 마련하곤 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할 말 좀 하고, 이벤트 몇 번 하다 사들어 지는 곳이 태반이다. 애당초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한 적도 없고 그저 당장 눈앞의 몇몇 이벤트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것을 선택한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략 한 달 반 정도 살펴본 결과, 커즈와일 블로그의 운영을 보면 나름 열정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아쉬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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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내 지적한, 사용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보다는 아직까진 홍보, 역사 소개 위주다. KURZWEIL 제품을 쓰는 사람이 모두 전문가라 필요 없다 생각하는진 모르지만, 사용자 카페의 글을 보면 분명히 나처럼 비 전문가도 쓰고 있고 기계만 달랑 놓고 건반만 누르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단순히 몇몇 이벤트로 사용자 달래고, 뉴스들 스크랩해서 보여주는 것을 벗어나 본격적인 사용자 지원책을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KURZWEIL.

지금 내가 생각하는 KURZWEIL의 모습이다. 분명히 악기는 멋지다. 끝내준다. 그런데 수면에 비친 그것을 보고 KURZWEIL은 도취되어 딴생각을 하지 못한다. 워낙 악기가 좋다 보니 다른 거 하나도 안 준비해놓아도 고객들이 스스로 찾아서 사준다. 그래서 한없이 자기 매력에 빠져 그걸 당연한 듯 여기며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는 교회 등에서 많이 사주고, 국외가 주력이라 그런 것일까? (매뉴얼 준비나 여러 과정을 보면 그런 게 느껴진다. 한국 시장은 현지화해서 내놓는 수준이라고.)

영창 KURZWEIL 본사 1층에 항상 보이는 X배너 광고.

거기에 평생 안주할 것인가? KURZWEIL은 악기다운 악기를 만든다는 기본은 충분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팔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공략할 순 없을까? (솔직히 종교에 특화한 버전을 낸 것을 볼 때 주먹구구식이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철저하게 한국 시장을 분석하고 가장 효과있는 마케팅을 펼친 결과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인다.)

매번 질문에 대한 답변에 “KURZWEIL은 왠지 어려운 악기” 이런 건 KURZWEIL 스스로 자초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어려운 악기라도 사람이 쓰라고 만든 것. 분명히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지식을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눠줄 효율적인 방법이 있진 않을까?

그냥, 국내 시장은 구색 맞추기인 것일까?

아니라면 역사가 몇 년인데 제대로 해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나지 않았는가.

지나치게 쓴소리 위주로 글을 작성했다. 제품이 좋은 건 사실이니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매우 좋은 점에 대해선 설명해줄 테니 난 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고 싶었다. 비전문가에 악기를 처음 산 사람이기 때문에 음악에 익숙하고 악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도 모른다. 비논리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어떤 이유에서 이런 쓴소리를 쓰는지를 밝히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 글들을 그냥 사용자 카페에 써봐야 소귀에 경 읽기로 끝났겠지만, 마침 사용기 이벤트를 하니 그것을 이용해서 직접 말해보고 싶었다. 이벤트로 응모하면 최소한 관계자 몇 명은 읽어보겠지.

쓴소리는 그만 하고, PC3x의 전원을 올리자.

이제, 내가 좋아하는 곡을 띵동띵동 서투르게 눌러가며 연습할 시간이다.
지금은 악보 보고 따라치기도 벅차지만, 언젠가 이 KURZWEIL PC3x로 나만의 소리를 만들고 그것으로 멋지게 연주할 날이 오겠지.

*주1 : YAMAHA DX7 – 1983년 YAMAHA에서 발매된 FM음원을 이용한 전자 악기. 6개의 사인파를 각각 알고리즘으로 조합해 복잡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원리는 아날로그 시절부터 이론적으로 존재했지만, DX7은 정확성을 가진 디지털 기기로 구현한 실질적 시작기라고 할 수 있다.

*주2 : 신디사이저로 흔히 쓰지만,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신시사이저로 통일했다.

*주3 : Shade. EX-TOOLS사에서 만든 3D그래픽 소프트웨어. 베지어 곡선을 사용한 모델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일본 등을 중심으로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였다. 현재는 e-frontier에서 제작 판매를 하고 있다.

*주4: TabletPC 키보드, 마우스, 터치패드가 아닌 화면을 평판 입력으로 사용하는 PC. 과거에는 OS로 WindowsXP Tablet Edition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무거운 OS, 많은 메모리 사용량 등의 이유로 한 때 시장이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다. 지금은 iPAD를 중심으로 한 iOS제품군, 갤럭시탭 등의 안드로이드 제품군이 선보이면서 새로이 부흥을 준비하고 있다.
단, KURZWEIL SoundEditor는 Windows XP나 Windows7등의 제품군이 OS로 사용된 타블렛PC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주5 : MIDI는 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의 약자다. 사전에 midi로 검색하면 단어가 몇 개 나오는데, “남프랑스”는 요구하는 답인 MIDI보다 먼저 나온다. 즉 번역자는 MIDI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주6 : 아두이노(ARDUINO)는 이탈리아의 이브레아 인터랙션 디자인 대학원(IDII; Interaction Desing Institute Ivrea)에서 개발한 미니 컴퓨터다. 디자인등 예술계 사람들도 쉽게 전자공학적인 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쉽게 설계됐다. 관심을 두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http://asteris.pe.kr/blog/1223 에 자세한 소갯글을 써 놓았다.

Adobe CREATIVE SUITE 5 체험판 리뷰 #1

Adobe는 UFO를 주웠다.

그간 공개되었던 포토샵의 여러 기능 동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한결같이 반응했다. “어도비시스템즈가 UFO를 주운게야.” 뭔가 막연히 바라던 기능. 그러나 당장 내가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던 그런 기능이 동영상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엄청난 수학계산의 결과겠지만)

그 Adobe Creative Suite 5(이하 CS5)의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가 지난 5월 25일 한국어도비시스템즈 주최로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렸다. 여러 가지 기능 설명, 실연, 그리고 경품 추첨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된 상태에서 종일 진행되었다. 현장에서도 특가로 판매장이 열렸으나 소비자가 느끼기에 그리 특가는 아니어서 김새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직접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써볼 수 있는 기회였다.

7월 초, 대구와 부산에서 또 한번 이벤트가 열리니 관심있는 사람이나 서울이 아니어서 참가 못했던 사람들은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http://www.creativefreedom.co.kr/cs5launch/road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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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행사가 마냥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마스터급이 아닌 이상 CS5의 모든 제품을 쓸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잠시 자리를 비워 행사장보다 더 특가로 Adobe Creative Suite 5 Production Premium을 구하고 돌아왔다. 프로덕션 프리미엄은 동영상 작업 쪽에 특화된 제품군이다. Photoshop, illustratior는 기본이고 Flash, AfterEffects, Premiere Pro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제품은 이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기 때문에 출시일 바로 샀다.

하지만, 안 써도 뭔가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 그렇다고 훔쳐올 수는 없는지라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데, 한국어도비시스템즈의 공식 홈페이지에 재밌는 페이지가 떴다. 바로 어도비 티티존(http://www.adobecreative.co.kr/attz/). 여기서 체험판 디스크를 신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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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다구나싶어 바로 신청했다.

한동안 바쁜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내고 어느정도 마무리되어 숨 돌릴 수 있게된 즈음, 하얀 봉투의 소포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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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익은 빨간 로고. 이때까지만해도 그냥 체험판이라고 디스크 한 장 달랑 주는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정품 패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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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리케이션 디스크 2장, 지원 디스크 1장, 아크로뱃 디스크 1장으로 총 4장이다.

대인배 한국어도비시스템즈는 미국에선 별도 요금(무려14.99불) 받고 보내주는 체험판을 공짜로 보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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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로 가지고 있는 CS5 프로덕션 프리미엄과 비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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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정품 패키지랑 똑같다.
그렇다. 째째하게 대충 구워놓은 그런 체험판이 아니었다. 단지 외부 케이스가 없고, 시리얼 번호 스티커가 안붙었다뿐이지 정품 패키지 구성 그대로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들어있는 프로그램 종류가 더 적은 프로덕션 프리미엄 애플리케이션 디스크는 3장. 마스터 콜렉션은 2장. 더 많아야할 마스터 콜렉션 애플리케이션 디스크 장 수가 더 적다. 어찌된 걸까?

우선 가지고 있는 프로덕션 프리미엄 패키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고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ONLY FOR DISTRBUTION IN ASIA PACIFIC AND JAPAN

즉 아시아와 일본용 패키지란 얘기다. 돌려 말하자면 싸다고 미국에서 사왔다가는 정품 인정을 못받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약간의 웹서핑으로 나라별로 패키지 구성(디스크 장 수)이나 디자인이 다름을 확인했다.

실제로 이번에 받은 체험판과 가지고 있는 아시아용 제품을 각각 실행시켜 언어 선택 부분을 비교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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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 차이가 디스크 장 수의 차이로 연결된 모양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식 시리얼을 넣으면 바로 정품으로 설치되는 기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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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커버 뒷면의 시리얼 번호 스티커가 없을뿐 정품과 동일하다. 실제 정품은 뒷면에 이렇게 스티커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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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이번에 받은 체험판, 오른쪽이 프로덕션 프리미엄 정식 버전이다. 생산지도 차이가 나는데 체험판은 미국, 아시아판은 싱가폴로 되어 있다.

이런 기쁜 소식(?)을 자주 다니는 D-SLR관련 커뮤니티에 알렸고, 그 뒤로 사람들이 몰려가서 신청을 한 것 때문인지 며칠 뒤 티티존에는 다음과 같은 공지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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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정품 패키지라는 표현은 과장이며 거짓이다.
고속 인터넷 덕에 다운로드 전용 S/W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시리얼 넘버 없는 제품은 단순한 물리적인 매체에 백업해놨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픽, 멀티미디어, 출판 업계 물 좀 먹었다는 사람에게 또, 그쪽을 바라보고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지고 싶은 S/W를 하나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Adobe CS5 Master Collection을 고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비록 당장 정품은 손에 넣지 못하더라도 이렇게나마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즐겁지 않을까 싶다.

자, 1회차는 간단히 외관을 살펴본 것으로 여기까지.

다음에는 간단한 설치과정에 대해서 다뤄보기로 하겠다.